[사람의 가슴 안에]
시
[사람의 가슴 안에]
눈이 다가가기 전에
가슴에 먼저 담긴 사진
카메라 셔터가 찰칵하기 전에
작살에 먼저 꽂힌 사진
이미지로 저장하기 전에
이미 보관된 사진
인화해서 앨범 속에 간직하기 전에
벌써 기록된 사진
사진(寫眞),
벗기고 베껴도 다다를 수 없는 알맹이,
아이의 손으로 잡을 수 없었던
흰나비와 노랑나비
몸짓에 달아나는 나비는
눈짓만을 허락하고
그물을 꺼내는 동작에
유유히 빠져나가는 아름다운 월척
기껏 건져 올린,
어쩌다 얻어걸린 못마땅한 물고기와 피라미들
수없이 삭제하고
애써 타협한 한 녀석을
온갖 도구로 손질해도
살아서 날뛰던 그놈을
평면 도마에서 살려낼 순 없고
멀어져 간 월척을
한숨으로 뒤늦은 배웅 하며
털썩 주저앉는다
비린내 나는 사진들은
빈손으로 훌훌 털리우고...
이제 가슴 속 사진을
가슴으로 안아준다
가슴 속 사진을
가슴으로 안아준다
- 박 상 민 -
수필
[가슴 속 사진]
사람의 가슴 안에는 참 많은 사진이 담겨있다. 그 사진을 기억이나 추억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눈꺼풀을 열어 동공으로 받아들인 빛이 순간적인 감정과 교류하면서 우리 안에 새겨진다. 그 새겨짐의 과정에서 수정체(렌즈)의 초점 행위는 인물, 사물, 풍경을 선택적으로 입체화하고 색채화한다. 새겨진 이미지들은 생각과 감정이라는 액자 틀에 간직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미지는 편집과 재편집을 거듭하고, 액자도 다른 틀의 생각과 감정으로 교체되기도 한다. 내적 의식의 전원 버튼이 켜져 있는 한 말이다.
사진기를 꺼내 기록하여 간직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때는, 아름다움을 보거나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인 것 같다. 순간이라는 건 물처럼 흐르는 것이어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순간 ―사랑한다고 느끼는 순간―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지만, 최고의 순간은 어느덧 흘러가버리거나 못마땅하게 변형되어 있다. 기필코 맘에 드는 사진을 건지려고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연출도 하고 설정 샷도 시도하지만, 지나가버린 최고의 순간으로 다시 수렴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아름다움의 순간과 사랑의 순간은 그렇게 우리를 자꾸만 애달프게 한다. 꿀을 빨려고 잠시 내려앉은 나비를 향해 어린아이가 충동적으로 손을 뻗지만, 흰나비와 노랑나비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눈짓만을 허락하는 나비는 서툰 몸짓에 자신을 결코 내어주지 않는다. 망망대해에서 월척을 낚으려 황급히 그물을 던져도 유유히 빠져나가는 물고기를 황망하게 배웅할 뿐이다. 못마땅하게 애써 타협한 순간의 이미지들을 잔뜩 건져 올려 요리조리 편집 도구를 활용하며 손질해본다. 아무리 다듬어도 아무리 벗겨내고 덧씌워도, 가슴에 이미 포착되어 기록된 알맹이에 턱없이 이르지 못한다.
비린내 나는 사진들을 빈손으로 훌훌 털어내며 내 안에 간직된 최고의 순간들, 아름다움과 사랑의 그 순간들을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눈이 다가가기 전에 마음이 먼저 닿았던 사진, 카메라 셔터가 찰칵하기도 전에 작살에 먼저 꽂혀버린 사진, 이미지 파일로 저장하기 전에 이미 보관되어 있는 사진, 인화해서 앨범으로 간직하기 전에 이미 기록된 사진을 이제 빈손이 된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었다. 그 사진들을 소중히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아름답다 느꼈고 사랑이라고 말해주었던 누군가의 가슴도 그렇게 꼭 안아주고 싶다.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