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낚시]
시
[하늘 낚시]
하늘에 바람이 부는 날
낚시를 하러 가자
하얀 실을 풀어 푸른 하늘을
휘~휘저어 보자
팽팽한 입질이 오면 실을 더 풀어
물고기를 더 놓아주자
푸른 하늘이 걸려들 때까지
미끼가 월척이 될 때까지
- 박 상 민 -
수필
[연날리기와 낚시]
수원 화성 동쪽에 위치해 있는 창룡문은 연날리기 명소이다.
굳이 바람 부는 날이 아니어도 이곳을 방문하면 넓은 잔디밭에서 연을 날리는 노인과 아이를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과 창룡문으로 연을 날리러 갔다. 형형색색의 연이 긴 꼬리를 우아하게 펼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솟구치는 바람도 한몫해서인지 아이들이 잡고 있는 연도 날아오르고 싶어 안달이 난 듯 펄떡펄떡 날뛰는 것 같았다. 마치 물 밖으로 끄집어낸 물고기 마냥...
연날리기를 바라보며, 연날리기와 낚시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연날리기와 낚시의 배경은 각각 하늘과 바다이다. 광활한 하늘과 드넓은 바다는 푸르름을 공유하며 연결되어 있다. 연의 얼레와 실은 각각 낚싯대/ 낚싯줄의 모습과 닮았다. 팽팽한 실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 연은 바람의 모양새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몰아치고 솟구치고... 부드럽다가도 때론 강렬하게 부는 바람의 움직임은 가히 파도의 역동성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다양한 연의 모습은 여러 물고기의 움직임과 흡사하다. 바람을 타고 유유하게 물결치듯 흐르는 연 꼬리의 여유롭고 우아한 몸짓은 덩치가 큰 물고기의 모습, 연의 크기가 작고 꼬리가 짧은 것의 분주함은 작은 물고기의 기민함을 닮아있다. 그리고 연날리기와 낚시의 상관관계에서 연줄은 낚싯줄로 치환된다. 연의 얼레를 풀고 감는 동작은 낚시꾼이 낚싯줄을 풀고 감는 행위인 것이다. 연 날리는 사림이 바람의 강도를 살피듯 낚시꾼은 물때를 살핀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점은 줄이 팽팽해질 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연은 줄이 팽팽해져야 바람을 타고 더 높이 날아오르기에 실이 당기는 힘이 세어지면 얼레를 잽싸게 풀어 연을 하늘 높이 보내주게 된다. 반면에 낚시의 경우, 소위 입질이 오면 ―물고기가 미끼를 제대로 물어 줄의 긴장이 극에 달하면― 낚시꾼은 물고기와 한 판 힘겨루기를 벌이며 물고기를 잡아 올리기 위해 세차게 낚싯줄을 감는다.
건져 올리는 것 없이 빈손으로 마무리 짓는 연날리기는 그저 하늘 높이 연을 날리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놀이이다. 하지만 낚시꾼은 그날 자신이 건져 올릴 월척을 기대하며 강물에 낚싯줄을 드리운다. 설령 월척은 물 건너가더라도 작은 물고기 몇 마리라도 건져 올려서 빈손을 면하고 싶은 것이 낚시꾼의 바람일 것이다. 이처럼 연날리기와 낚시는 그 모습과 행위가 서로 닮은 듯 다르고 목적의식에서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이처럼 서로 연결되면서도 어긋나는 연날리기와 낚시의 간극을 메우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산티아고(Santiago)할아버지가 그중 한 명이고, 다른 한 명은 중국의 그 유명한 낚시바늘 없이 낚시를 한 강태공(姜太公)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자신의 불운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망망대해로 작은 배를 띄워 낚시를 떠나는 불굴의 인물이다. 자신이 타고 있는 배보다 더 큰 청새치와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인다. 결국 월척을 잡아 올리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상어의 공격으로 빈손이 되고 만다. 아무런 소득 없이 다시 어촌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노인은 소년의 따뜻한 시선을 등 뒤로 하고 작은 집으로 돌아가 피곤한 몸을 뉘고 곤히 잠든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노인과 바다」는 삶의 고독과 허무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망대해를 향해 돛을 띄우는 인간의 의지와 긍정성을 노인의 독백을 통해 잘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노인이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고 월척과 함께 돌아왔다면 이 작품이 시대를 거슬러 지금까지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잡아 올린 월척을 허망하게 잃어버렸지만, 노인 한 명이 작은 돛단배를 타고 한 마리의 큰 물고기와 겨루며 하늘과 바다의 풍경 속에서 낚싯줄 하나로 팽팽하게 연결되는 것 그 자체로 독자에게 울림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강태공은 낚시바늘 없이 낚시를 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관심은 물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었다. 오랜 세월 곤궁함을 견디며 자신의 때를 기다린 강태공은 마침내 주나라 문왕에게 채택되어 뛰어난 용병술을 펼치고 나라를 부강하게 했다. 기다림의 미학과 지혜를 보여주는 강태공이 매일 낚시터에 찾아가 바늘 없는 낚싯대를 강물에 드리우며 바라고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일까? 상상해 보건대, 흐르는 강물도 보이고 그곳을 헤엄치는 물고기들도 간간이 보였겠지만, 정녕 바라고 기다린 것은 강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흔들리고 출렁이는 물결로 강물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도 그와 같이 흔들리고 출렁거렸을 것이다. 아무리 일그러지고 흐트러져도 반드시 본모습으로 끊임없이 돌아와 있는 고요한 중심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 고요함이 초연한 기다림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바라던 결과가 어이없이 사라질 수도 있고, 결과를 예상할 수 없이 초조하게 시간만 흘러갈 수도 있다. 넓고 큰 세상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작디작음이 못 견디게 답답할 때가 있다. 뭐라도 손에 넣고 싶고 움켜쥐고 싶어서 몸엔 힘이 들어가고 조바심으로 신경이 곤두선다. 그때는 하늘로 낚시를 떠나보자. 연날리기는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하늘이 아무리 넓고 바다가 아무리 깊더라도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과 함께 연결되어 있다. 드넓은 하늘에서 연은 한없이 자유롭고, 속 깊은 바닷속에서 비록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해도 나의 본모습은 마침내 떠오른다. 매일의 삶에서, 낚싯줄 같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뭐라도 건져 올리기 위해 애쓰는 삶의 낚시터에서 때론 하늘 낚시를 하는 사람이고 싶다. 광활한 풍경 속에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그런 낚시 말이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세상 풍경 속으로 자유롭게 띄워 보내주는 그런 연날리기 낚시말이다. 하늘을 낚는 마음으로 자유롭게 다가서고, 내가 드리운 미끼가 월척 그 자체라는 믿음으로 홀가분하게 일상을 대하는 자세로 이 시와 수필을 쓴다.
팽팽한 입질이 오면 실을 더 풀어
물고기를 더 놓아주자
푸른 하늘이 걸려들 때까지
미끼가 월척이 될 때까지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