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부리 아빠]
시
[혹부리 아빠]
아빠가 된다는 건
어쩌면 혹부리 영감이 되는 일
치렁치렁 무게감
대롱대롱 책임감
영감님 어깨도 축축 늘어지고
무서워도 도깨비 만나
뚝딱! 혹 떨어지는 상상
솔직히 달콤해
몹쓸 상상에도 아랑곳없이
혹은 쑥쑥 자라고
어디를 가도 치렁치렁
무얼 해도 대롱대롱
혹부리 영감 노랫소리는
혹주머니에서 나온다는데
흥얼흥얼 콧노래부터 불러보자
혹을 대롱 달고 부르고
혹을 치렁 차고 부르자
혹을 껴안고도 부르고
혹을 감싸고도 부르자
혹을 받쳐 올려가며 불러보자
혹이 복(福)이 되는 요술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치렁치렁 대롱대롱
줄기차게 불러대는
노랫소리에 있었다고
동네방네 노래 부르고 다녀보자
- 박 상 민 -
수필
[혹부리 아빠]
육아를 한다는 건 때론 혹부리 영감이 되는 일 같다.
첫째 육아를 한참하고 있을 무렵, 둘째 임신 소식을 접했다. 아내는 배가 두 번 크게 불렀고, 아빠인 나는 두 볼에 두 혹이 커다랗게 불렀다.
사랑스러운(?) 혹들은 쑥쑥 자라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요즘 강아지 육아를 또 하게 되면서 나에게는 이리저리 달린 게 많아졌다.
아이들이 싸우지도 않고 사고를 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팔다리 어깨 무릎 허리에서 어떤 신호를 보내온다. 앓는 소리를 내며 거실에 대자로 누워있다가 문득 아이와 강아지 육아를 하는 내 모습이 혹부리 영감이라고 여겨졌다. 어디를 가도 치렁치렁 무얼 해도 대롱대롱 달려있는 이 혹들 좀 떼어내고, 오롯이 나 홀로 홀가분해지는 상상... 이 몹쓸 상상이 왜 이리 달콤하고 짜릿한지... 고약한 생각에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면서 옛 속담을 맘속으로 되새긴다. '혹을 떼러 갔다가 되레 혹을 붙인다'
이 모든 상황을 한 번에 뚝딱! 해결해 주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일이 벌어지거나 아님 '로또라도 당첨되면 얼마나 좋을까...' 푸념이 쏟아지기도 한다. 거실에 한 참 누워 한숨을 토해내며 그렇게 나자빠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일어나 아이들에게 종종 읽어 주었던 전래 동화 「혹부리 영감」을 다시 펼쳐보았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어느 혹부리 영감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외딴집에 들어가게 된다. 심심하고 외로운 맘을 달래기 위해 혹부리 영감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어 흥이 오른 혹부리 영감은 목청껏 노래를 불러 댄다. 밤이 깊어지면서 도깨비들이 노랫소리를 듣고 혹부리 영감 곁으로 모여든다. 느닷없는 도깨비의 출현에 혹부리 영감은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계속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랫소리가 좋았던지 도깨비들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즐거워하다 문득, 혹부리 영감에게 묻는다. "영감! 노래 참 좋구먼. 영감 노랫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누?"
"허허 내 노래는 이 치렁치렁 대롱대롱 달린 혹에서 나오지!"
그 이후의 내용은 대부분 다 알다시피 도깨비들이 그 말을 믿고 자신의 또깨비방망이를 휘둘러 혹을 떼어가고 도깨비방망이를 영감에게 선물로 전해준다. 혹부리 영감은 혹도 떼고 도깨비방망이도 얻게 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이웃 마을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은 자신도 혹을 떼고 싶어 똑같이 행동을 따라 한다. 도깨비들은 혹을 떼러 온 혹부리 영감에게 혹을 하나 더 달아주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혹부리 아빠가 된 심정으로 다시 그 전래 동화를 들여다보니, 이번엔 '혹'과 '노랫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첫 번째 혹부리 영감은 지게를 지고 산에서 나무를 하면서도 노래를 불렀고 심심하고 외로울 때도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무서운 도깨비들을 만났을 때도 멈추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일과 삶의 무게를 노래로 부르고 당혹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마음을 달래며 노래를 부르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혹부리 영감의 모습이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왔다. 치렁치렁 대롱대롱 혹을 달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어쩌면 혹부리 영감은 자신의 노랫소리가 정말 혹에서 나온다고 스스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혹을 달게 되는 일이 있다. 굳이 육아가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책임감의 무게로 짓눌리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땐 한숨 소리 앓는 소리 가득 찬 신세 한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원망과 짜증 그리고 회피에는 다 이유가 있다. 물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 맘을 나누며 같이 헤쳐 나갈 일이지만, 오롯이 나 홀로 무게감을 감당해야 할 땐 어떻게 할까? 그때 너무 막막해하거나 계속 괴로워하지만은 말자. 그냥 들이쉬고 내쉬는 숨에 '콧노래'부터 살짝 불러보자. 어차피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니까. 그때 노래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아무 노래 아무 멜로디도 다 괜찮다. 심지어 자기 맘대로 작곡한 허밍을 해도 된다. 그냥 살짝 내쉬는 숨에 '콧노래'를 얹어 보는 거다. 발라드, 댄스, 트로트, 팝송, R&B, 힙합, 불경, CCM... 장르가 뭐든지 상관없다. 가사를 몰라도 괜찮고 다 못 불러도... 심지어 노래를 못해도 좋다. 그냥 내쉬는 숨에 살짝 업힌 콧노래니까. 좀 괜찮아진다면 이제 수시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러보자. 그러다 마음이 좀 가벼워지고 흥이 좀 오르면 가사를 더해 불러 보는 거다. 여유가 생기면 주변에 코인 노래방도 한 번 찾아가 마이크 잡고 한 곡 쭉~ 뽑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혹이 복(福)이 되는 요술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노랫소리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한 참 하던 시절 집 앞 코인 노래방에서 찍었던 사진을 찾아보았다. 혹부리 영감과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를 읽어서인지 노래방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색찬란한 조명이 신비로운 노깨비방망이질 같아 보였다. 그리고 혹부리 아빠인 내 모습이 왠지 도깨비(?) 같아 보이기도 했다. 수줍게 잡은 저 마이크도 어쩌면 혹을 복으로 바꾸는 요술 방망이가 아닐까.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