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시를 품은 수필

[두 번 피는 꽃_ReFlower]

한송이 안개꽃 2023. 11. 23. 11:40


[두 번 피는 꽃_ReFlower]

 

 

두 번 피는 꽃이 있다

 

꽃 피는 봄이 지났건만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다시 피는 꽃이 있다

 

계절을 착각하고

흐름을 역행하고

섭리에 반란을 일으키며

피는 꽃이 있다

 

나비도 벌도 없이

피는 꽃이 있다

 

이슬보단 된서리

산들바람보단 싸늘함 속에

피는 꽃이 있다

 

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아닌

제 뒤통수를 치며 튀어나온 오발탄같이

피는 꽃이 있다 

 

활짝 피지 못하고 반짝

살랑거리지 못하고 생뚱

보드랍지 못하고 버둥

 

그저 꽃이고 싶어서

꼭 다시 한번 꽃이고 싶어서

그렇게 피는 꽃이 있다

 

 

- 박 상 민 - 

수원시 샘내공원 11월 명자나무꽃(산당화_일명 아가씨꽃)

 

 

수필

[두 번 피는 꽃_ReFlower]

 

 

40대 중반, 안으로 보나 밖으로 보나 영락없는 아저씨이지만, 나는 발레를 시작했다.

 

집 주변 여러 발레 학원을 문의했지만 시작이 순탄하지 않았다. 발레 선생님이 거절했고, 어떤 발레 선생님은 우호적이었지만 다른 여성 회원분들이 반대했다. 거절과 반대의 이유는 저마다 타당했지만, 그건 모두 쓰디쓴 껌을 씹는 맛이어서 도저히 삼키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계속 곱씹고 있자니 쓰라린 맛만 우러났다. '이거 성차별 아냐?' '구청과 시청에 민원 넣을까?' '그 사람들 너무한 거 아냐?' '내가 무슨 생태계 교란종인가?' '지금 내 나이에 뭐 대단한 거 하겠다고...'지금와서 무슨 발레리노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분노 섞인 푸념이 거품처럼 차올랐다. 나르시시즘의 꽃잎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초라했고 등 돌린 외면은 괘씸 했다. 그러다 문득 마주 선 거울 앞에는 쇠락의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서 버둥거리는 내 모습을 경멸감이 살짝 썩인 애틋함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내 안에 맴도는 쓰라림을 애써 뱉어내지 못하고 한참을 우물거리다가 시간이 지났고 계절도 바뀌었다.

 

11월은 가을 햇살의 따사로움과 느닷없이 불어닥치는 찬바람이 뒤섞여 있는 달이다. 양극단이 공존하는 계절의 힘이 마치 줄다리기하는 듯하다. 푸른 하늘 아래 오색찬란한 잎사귀와 함께 이 따사로움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은 착각을 하며 한쪽으로 넋 놓고 당겨지다가도, 어느새 성큼 들어찬 차가운 공기에 정신이 번뜩 들어 어김없이 겨울로 나아가고 있음을 승복하게 된다. 두 계절의 힘이 팽팽해져 있던 가을인 듯 겨울 같은 어느 날,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봄에 피었던 익숙한 꽃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장미와 자산홍, 백철쭉 그리고 명자나무꽃

수원 집주변 11월 장미와 철쭉
수원시 샘내공원 11월 명자나무꽃(산당화_일명 아가씨꽃)

 

 

 

명자나무꽃은 원래 4월에 개화함. 옛날에는 여자가 이 꽃을 보면 바람난다고 하여 집 앞에 심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짐. 일명 '아가씨꽃'으로 불림. 명자나무꽃말은 겸손과 평범. 

 

 

 

 

4~5월에 개화하는 꽃들인데 철모르고 11월 중순에 다시 피다니... '계절을 착각한 걸까? 아니면 제철도 모르고 피어버린 철부지 꽃인가?' 약간 반가우면서 놀랍기도 하고 지구 온난화가 약간 걱정스럽기도 하고 이윽고 맞이할 겨울나기에 안쓰럽기도 했다. 가을과 겨울 언저리에 아주 드문드문 핀 그 꽃들은 왠지 봄꽃 같은 당찬 기운은 없어 보였다. 아침 이슬 대신 된서리를 몇 차례 맞아서인지 어딘가 시들시들해 보였고 생기 있게 활짝 피었다기보단 생뚱맞게 반짝 피어있었다. 주변의 여러 꽃망울을 터뜨려 줄 신호탄이라기보단 잘못 쏘아 올린 오발탄(誤發彈)이었다. 꽃씨를 날라줄 나비와 벌도 없이 멋모르고 철모르고 핀 꽃 앞에서 발걸음은 뚝 뚝 멈추었다. 어쩌면 40대 중반의 뻣뻣한 남자의 몸으로 정식으로 무용을 한 번도 배워보지 않았는데도 발레하려고 버둥거리는 나의 모습이 떠올라서 일 것이다. 

 

꼭 튀어 보이려고 발레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좀 다른 외모를 하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자연스러운 자기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대단하지 않아도 대견하다는 걸 스스로 알아주고 있으니까. 값어치 있는 삶을 살지 못해도 자신의 가치를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으니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11월 어느 길목에서 다시 마주한 꽃들에게 '철없이 핀 철부지 꽃'이라며 핀잔주려는 마음을 접었다. 어느 계절에 피더라도 꽃은 꽃이며, 땅에 엄연히 뿌리를 내리고 햇살에 정직하게 반응하며 빗방울을 꼬박꼬박 받아 마시지 않는 꽃은 없으니까. 그것이 그 꽃의 선택이며 결말이다. 그래서 그 꽃들을 '두 번 피는 꽃'(reflower)이라고 불러 주었다. '다시 한번 꽃이고 싶어서 두 번 핀 꽃'이라 불러주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절과 상관없이 다시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을 어설픈 발레 동작과 함께 조금씩 펼치려 한다.

 

활짝 말고 반짝

좀 생뚱맞게

좀 버둥거리면서

그렇게 피련다.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