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안개꽃 2021. 4. 6. 17:57

[아빠 아저씨]

 

 

나는 아저씨 같은 아빠이고 싶다

내 아이들에게

"저 사람도 그냥 한 명의 아저씨야"

라는 느낌이 드는 그런 아빠였으면 좋겠다

이 세상의 수많은 아저씨들 중에

참 괜찮은 아저씨

"그 아저씨가 우리 아빠야"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 박 상 민 -

 

 

시를 품은 수필

[아빠 아저씨]

내가 우리 아버지를 한 사람의 아저씨로 본 나이는 32살 즈음이었다. 그날따라 역정 내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생전 처음 보는 어떤 낯선 아저씨의 화내는 얼굴로 보였다. 한 5초간 그래 보였다. 그냥 어떤 아저씨가 내 앞에서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냥 어떤 아저씨가 무슨 무슨 일로 화가 단단히 나신 모양이었다. 한 5초의 시각이 지나고 그 아저씨가 바로 나의 아버지라는 느낌이 아주 낯설고 당연해졌다.

부자 관계가 아니라 인간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순간이 그랬다. 화를 내실 땐 불타는 바위 같았던 아버지. 그 불길과 열기에 내 눈물은 그의 앞에서 어려서부터 자취를 감추었었다. 그랬던 내가 그를 두려움 없이 마주 대하는 것이었다.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내 안에 내가 대견해하고 있었다. 험한 산을 오르다가 먼저 올라온 누군가 "도착하셨네요. 수고 많으셨어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도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아버지도 달라지지는 않으셨다. 분노의 불길만이 해를 거듭할수록 사그라들고 있을 뿐이다.

화산이 폭발할 때 가장 약한 곳을 뚫고 용암이 넘친다. 화산에게는 폭발하는 지점이 가장 약한 곳이다. 타오르는 불길이 무서워 몸을 사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 화산을 조금씩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나는 화산 어딘가 용암이 분출구를 노리고 있는 곳에 다가가, 차가운 소주 한 잔을 부어드렸다. 그리고 화산의 불길에 동참했다. 나도 화가 나서가 아니라 어떤 친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미안함에서 나오는 친절. 그래서 낯선 누군가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해지는 그런 경험 누구나 있지 않나.

42살이 되어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가끔 두 아이에게 활화산일 때가 있다. 용암이 취약한 틈새를 찾아 뿜어져 나오려 하면 어느새 아이들은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방 한구석으로 대피했지만, 마음속 어떤 구석으로 내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말라가는 눈물을 뒤로하고...

또 다른 화산이 되어가고 있는 요즘. 화산 말고 언덕이 되어야겠다는 아빠로서의 결심과 이해받고 싶은 인간적인 고백을 더해 이 시를 썼다. 푸르르기도 하고 중간에 공터도 있어 뛰어놀 수도 있는 그런 언덕. 미더워서 슬그머니 올라가고 싶은 언덕이고 싶다. 아저씨 같은 아빠. 괜찮은 아저씨 같은 아빠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