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본다]
시
[바람을 본다]
나부끼는 깃발에서 바람을 본다
혼자 도는 바람개비에서 바람을 본다
떠다니는 구름에서 바람을 본다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바람을 본다
날리는 머리카락에서 바람을 본다
바람이 불어 깃발을 본다
바람이 불어 바람개비를 본다
바람이 불어 구름을 본다
바람이 불어 나뭇잎을 본다
바람이 불어 나를 본다
바람이 불어, 너를 본다
- 박 상 민 -
수필
[바람을 본다]
파주 평화누리공원을 '바람의 언덕'이라 부른다. 지리적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여기저기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시원했고 오래 많은 바람을 쐬다 보니 기분이 얼얼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을 따라 이것저것이 보인다. 그날 그곳에서 바람을 따라 본 것은 '깃발', '바람개비', 구름', '나뭇잎', '연', '머리카락' 등이다.
'깃발', '바람개비', 구름', '나뭇잎', '연', '머리카락' 덕분에 바람의 모양새를 가늠해 보았다. 방향이 정해져 있지만, 정해진 방향안에서 자유로운 바람의 모양새를 보았다. 움직임이 자유로워서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자연스럽고 자유스럽다.
그곳 '바람의 언덕'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 바람을 따라 슬픔이 들기도 한다. 운전으로 '자유로'를 타고 도착한 그곳에서 '통일로'가 보이지만, 아무나 자유롭게 그 길을 따라 건너갈 수 없기 때문이다. 땅이 나누어져 있다는 걸 '길'을 보며 알고 '바람'을 느끼며 절감한다. 철조망은 길고 촘촘히 높게 둘러쳐져 있다. 쳐다만 봐도 통각이 느껴지는 철조망이다. '이곳을 넘는 사람의 옷과 살을 찢겠다'는 폭력이 도사리고 있었다. 바람과 새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 철조망을 지나겠나 싶었다. '저곳을 통과하려면, 자기의 옷과 살을 걸 각오를 한 사람이겠지' 싶었다.
이곳저곳에서 바람을 쐬니 북향도 불었고 남향도 불었다. 혼자 방문했다 보니 여러 사람이 떠올랐다. 내가 알고 있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떠오르게 하는 바람이었다. 바람을 보며, 알고 모르는 얼굴들을 보며 시를 썼다. 바람을 쐬고 바람을 보며 쓴 이 글이 '작은 바람'이 되길 바란다.
- 박 상 민 -
최문수 작가 깃발 설치미술, '그날의 흔적'
평화누리공원에서, 혼자 도는 바람개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