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자리]
시
[파도가 지나간 자리]
성실한 파도의 호흡으로
자리가 만들어진다
파도의 들숨과 날숨으로
모래 캔버스가 펼쳐진다
밟히고 허물어진 자리를
쓸고 닦는 애달픔으로 비벼댄다
반반한 모래 가슴이
놓인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로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쓰고,
모래성을 쌓는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 박 상 민 -
수필
[파도가 지나간 자리]
해운대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았다.
파도가 하는 일을 살펴보고 파도가 일으키는 소리를 들어 보았다. 파도는 참 성실하다. 백사장 여기저기를 얼마나 줄기차고 힘차게 내달리는지...
파도가 치는 이유를 찾아본 적이 있다. 태양과 지구와 달이 일직선일 때, 바다는 부풀어 올라 밀물이 되고, 일직선이 아닐 때 지구의 원심력이 강해지면서 썰물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전체적인 바다의 배경에서 파도가 형성되기까지 하나가 더 필요한데, 그건 '바람'(wind)이다. 바람은 태양이 바다 표면을 데워 기압 차가 생기면 일정한 방향으로 불게 된다. 그 일정한 바람이 처음엔 물 표면에 작은 물결(ripple)을 일으키지만, 그 일정함이 더해지고 더해져 그 물결이 높아지고 높아지면 파도(wave)가 형성되는 것이다. 겉보기에 바다 표면에서 파도가 치는 것 같지만, 실제로 파도 내부 움직임은 회전하고 있다. 회전하는 힘의 상층부가 지구 중력을 따라 앞으로 무너지면서, 흔히 우리가 보는, 파도가 되고 파도 소리를 내는 것이다.
파도가 밀려 들어오고 밀려 나가는 걸 바라보며, 파도가 호흡한다고 느꼈다. 파도의 들숨과 날숨으로 모래는 반반한 캔버스가 되어간다. 태양, 지구, 달 그리고 바람이 약속한 것처럼...
성실한 파도의 호흡과 반듯해지는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나도 덩달아 호흡을 했다. 나의 들숨과 날숨도 내 가슴 깊숙이 이곳저곳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호흡을 했다. 성실한 파도가 밟히고 무너진 모래를 구석구석 보살피듯이, 내 호흡도 내 가슴을 반반하게 해 주리라 믿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보고 또 파도가 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좀 성실하게 호흡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 반반해진 내 가슴 자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이름을 쓰고 모래성을 쌓고 싶다. 지워질 그림과 잊혀질 이름과 허물어질 모래성을...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