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통역 & 번역/밥상과 책상사이(번역)

[번역사 vs 번역가] 호칭과 태도에 관하여...

한송이 안개꽃 2021. 7. 12. 11:38

 


 

번역을 하는 사람에 관한 호칭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번역사, 번역가, 그리고 번역작가입니다.  

 

번역()이라는 말은 동일하게 들어가는 데 마지막 음절의 한자어가 각각 다릅니다. 번역사부터 차례대로 알아보면, '사'()는  선비 사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번역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죠. '가'()는 '집'이란 뜻으로, 옛날에는 그 사람이 사는 집만 보아도 그 사람의 신분과 직업을 알 수 있었기에, '전문가 혹은 능통한 사람'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쓰입니다. 그럼 번역가라는 호칭은 '번역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 정의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으로 '작가'(作家)라는 호칭을 살펴봅시다. '지을' 작(作)에 '집' 가(家) 자가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작가라는 말은 '집을 짓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집을 짓는다고 하니 건축사 혹은 건축가라는 용어도 떠오릅니다. 이 호칭도 앞서 언급한 '사'()와 '가'()로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겠네요. 어쨌거나 '작가'라는 말은 건축을 하는 것처럼 글()로 공간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할 수 있습니다. 

 

집은 공간입니다. 우리가 집들이에 초대받아 어떤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면 여러 가지를 경험하게 되죠. 우선 집으로 향하는 길부터 시작해서, 집의 배경과 전체적인 건물의 외관, 현관 입구, 출입문, 거실과 방, 동선을 따라 나누어지는 구획과 공간, 인테리어와 소장품 그리고 집주인과 애완동물 등등... 우리는 그 공간에서 집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차나 음식도 즐깁니다. 건축하는 분은 이런 공간을 설계하고 짓는 일을 합니다.

 

어쩌면 작가(作家)로서 글을 쓰는 것도 하나의 공간(집)으로 독자(손님)를 초대해서 무엇을 소개하고 경험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다만 번역작가는 그 공간을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다른 나라에 마련하는 사람이겠지요. 그러니까 번역작가는 어떤 언어의 글을 다른 언어의 글로 바꾸어서 독자를 새로운 공간으로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번역 분야에서, 문학 작품 번역하는 분을 흔히 번역작가 혹은 번역가로 부릅니다. 물론 '옮긴이'라는 말도 있죠. 번역사는 주로 비즈니스 문서를 번역하는 분, 혹은 번역일을 하는 사람을 통칭하여 쓰이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번역사 혹은 번역가(번역작가) 중 어떻게 불리고 싶으십니까? 아니 누군가가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상관없이 번역 일을 하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가요? 번역사 혹은 번역가 아니면 번역작가 중에서 말이죠.

 

호칭 자체가 중요하진 않습니다. 호칭만으로 그 사람의 수준과 실력을 모두 나타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번역 분야에서 일을 하든지 업계 현실이 어떠한지에 상관없이, 자신이 글을 짓는 사람, 공간을 창조하는 사람으로 본인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번역 일을 평가절상하거나 절하할 맘은 없습니다. 다만 호칭을 떠나 태도에 관해 말하고 싶은 거죠. 번역사로 불리든 번역가로 불리든 상관없이, 글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독자를 초대하는 사람으로서 전문적인 역량을 발휘하겠다는 자세와 자부심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남이 뭐라고 부르건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그냥 모두 번역 일을 하는 사람이지요. 하지만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신을 성장시키는 발판이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동력이 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자신이 옮기는 글이 하나의 공간이 된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손님이 그 공간에서 편안한지 동선에 따른 공간의 배치는 적절한지 등을 감안한다면 더 좋은 창작 작품이 될 것입니다. 단순히 번역물의 수준에서만 머물지 않고 말이죠. 

 

문학 작품을 번역하진 않지만, 종종 제가 번역을 한 다음 칼럼을 작성합니다. 칼럼 내용엔 번역하고 난 다음 제가 느낀 점을 번역가의 입장에서 기술합니다. 원문 저자가 아니기 때문에 번역문에 싣지 못했던 내용을 글로 적습니다. 글쓰기의 어려움이 있지만, 번역이 비로소 완성된다는 느낌입니다. 저에게 번역은 하나의 집 짓기이며, 번역에 관한 글쓰기도 또한 또 다른 공간의 창조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번역가(번역작가)로 가는 길을 한 걸음 더 내딛습니다.

 

감사합니다.

-TranSquare(통번역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