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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시를 품은 수필

[꽃길]

by 한송이 안개꽃 2024. 4. 11.


[꽃길]

 

 

만개한 꽃을 보고

활짝 기쁘지 못한 것은 

언젠가 떨어질 꽃이라는 걸 알아서이다

 

떨어지는 꽃을 보고

살짝 맘이 아렸던 것은

아름다움이 다 한 때라는 걸 알아서이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그래서 전화를 걸고

그래서 달달한 걸 먹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시시하게 헤매는 길에서

꽃은 길이 되어 있고

길은 꽃이 되어 있다

 

꽃은

걷는 자에게 

길로서 다시 피어있다

 

걷는 자를 위해 몰래 피었다가

걷는 자를 위해 미리 피어 내린다

그렇게 꽃길을 걷는다

 

 

- 박 상 민 -

수원 숙지산 내려가는 등산로

 

수필

[꽃길을 걷는다]

 

여기저기 핀 봄꽃을 보며 반가웠지만, 가슴 한구석엔 조바심이 미세하게 끓어올랐다. 저렇게 핀 꽃이 금방 떨어질 거란 걸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꽃답던 나이가 지나갔음을 안팎으로 숱하게 직감하는 자는 저마다 비슷한 감정을 느낄 거라 본다. 집 주변 여기저기 핀 꽃들을 향한 나의 마음 졸임을 이랬다.

 

'매화는 겨우내 닫았던 창문을 열고 저렇게 청초하게 피었다가 금세 은은한 향기를 날려 보내고 떨어지겠지... 뒷산에 핀 진달래는 등산 한 두 번 하다 보면 사뿐히 즈려밟고 갈 새 없이 금방 자취를 감출 거야. 개나리는 저렇게 노랗게 까르르 쏟아지다가 초록의 풍경으로 얼른 스며들어버리겠지. 그럼, 목련은... 흰 비둘기처럼 날아갈 듯 움터있다가... 속살이 꽉 찬 만두 같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누렇게 툭 꺾여버릴 거야. 만개한 벚꽃은 어떻고... 바람 따라 딸랑딸랑 작별 인사를 하고 「벚꽃엔딩」 몇 곡 들으면 흔적 없이 끝이 나 있겠지...'

 

집 주변 여기저기 핀 봄꽃들을 감상하며 덩달아 반가워서 길을 걸으며 보고 또 보았지만, 아쉬움이 찌꺼기처럼 뱅뱅 맴돌고 있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조바심에 안달나기도 하고 기쁨에 들뜨기도 해서 옷장에서 맘에 드는 봄 옷 하나 차려입고 꽃구경을 나섰다.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했고 달달한 것도 사 먹었다. 

 

그렇게 봄꽃은 피어 올랐고 피어 내렸다.

 

피고 지는 꽃을 보며 마냥 기쁘지 않았던 건, 꽃다운 시절이 지난 나이란 걸 절절하게 체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떨어지는 꽃을 따라 고개도 툭 꺾이고 시선도 땅으로 향했다. 꽃은 걷는 길 구석구석 떨어져 있었다. 보도 블럭을 따라 파고들어 가 있었고 차량의 바퀴 바람에 휘감겨 돌기도 했고 흙 주변에 납작 엎드려 놓여 있는 꽃도 눈에 들어왔다. 길을 걷는 자를 위해 몰래 피었다가, 길을 걷는 자를 위해 미리 피어내려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꽃은 길로서 다시 피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꽃은 길이 되어있었다.

 

걷는 자에게 꽃은 길이 된다. 가슴 한편 아련한 구멍으로 봄바람은 계속 스며들고... 푸르름을 향해... 변해가는 풍경을 향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렇게 꽃길을 걷는다.    

 

- 박 상 민 - 

수원 꽃길 풍경과 걷는 아이들 그리고 강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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