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린왕자, 조각가 이영섭
평화누리공원으로 입장하면 두 개의 커다란 어린왕자 조각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집안 서재 어딘가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 일 때는 읽고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책.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되는 그 책 말이다. 이해됨과 동시에 자신의 어른다움을 알고 슬퍼지게 만드는 책이 '어린왕자'이다. 책 속 어린왕자는 여러 별을 여행하며 다양한 인물들(왕, 광대, 비즈니스맨, 술주정뱅이, 전등 교체하는 사람 등)을 만나며 그들의 어른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숱한 상징과 비유 그리고 명언들이 담긴 어린왕자는 이영섭 조각가를 거쳐 이곳 평화누리공원에 서 있다.
실제로 보면 어린왕자의 고개가 약간 기우뚱하다. 덩달아 표정도 갸우뚱하다. 아마도 어린왕자 눈엔 한국의 분단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나 보다. '왜 전쟁을 하지?', '바람과 새는 자유로이 날아다니는데...', '서로가 철조망을 둘러놓고 뭐 하고 있는 거지...'
어린왕자의 패션 트레이드마크인 목도리도 바람에 날리고 있다. 이곳 어른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바람을 따라 다른 별로 떠날 것만 같다.
번역 과정에서 알아본 이영섭 작가는 독특한 조각 기법을 구사하는 분이었다. 일명 '발굴 조각'이라 한다. '발굴 조각'은 땅 안에 콘크리트를 붇고 묻어두었다가 출토(발굴)하여 다듬어져 완성되는 조각 기법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조각가는 손으로 정을 쳐서 원석 안에 있는 조각상을 찾아내고 다듬어낸다. 이영섭 조각가는 조각 원형을 제작하고 땅에 묻어 시간과 풍화를 거쳐서 발굴한 다음 흙을 물로 씻고, 다시 다듬어서 작품을 완성한다.
조각을 땅에 묻었다가 발굴한다니... 겨울철 땅에 묻은 김치 장독대가 떠올랐다. 유적이나 고미술품 같은 느낌과 질감(마모와 풍화를 거친 흔적)이 조각 작품의 특징이다. 독창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전통미가 느껴진다.
두 개의 어린왕자 조각 중에 평화누리공원 입구에 있는 작품에만 작품 설명글이 있다.
아래에 작품 소개 한글과 영문이다.
이영섭은 ‘발굴 조각’이라는 독자적인 조각 기법을 다져온 작가이다. 발굴 조각은 땅 안에 콘크리트 시멘트를 부어 묻어두었다가 출토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이영섭에게로 와 순수한 아이가 되고 미륵이 되었다. 임진각 평화누리에 6미터의 키로 서는 <어린왕자>는 남과 북을 평화로 잇는 매개자이다. 분열과 대립의 장소에서 어린왕자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미래 한반도의 꿈을 보여줄 것이다. DMZ는 후고구려를 열망했던 궁예의 상징공간이기도 하다. | Lee Yeoung-Sup has been praised for his trademark “excavation technique.” Lee’s process consists of burying cementing materials to allow for natural weathering to form the concrete and later excavating the finished sculpture. Inspired by Saint-Exupery’s The Little Prince, he sculpted a pure child and a stone statue of Buddha. Standing six meters tall in Imjingak Pyeonghwa-Nuri Park, The Little Prince looks like an “in-between” to reconcile the North and the South in peace. The Little Prince envisions the future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dst of division and confrontation. The demilitarized zone (DMZ) is also a symbolic space for Gung-ye, the king of the Hugoguryeo, who aspired to reunite the ancient kingdoms. |
(1) '독자적인~ 작가이다'란 말을 'has been praised for~'로 압축해서 번역했다.
Collins Cobuild 사전을 보면 praise의 의미가 '상대를 높이 평가하다', '칭찬하다'의 의미로 쓰인다.
예문) If you praise someone or something, you express approval for their achievements or qualities.
(2) 문장 주어의 흐름을 보면, Lee Yeoung-Sup으로 시작했고 그다음 문장에서 Lee's process로 연결했다.
(3) '땅 안에 콘크리트 시멘트를 부어 묻어두었다가 출토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에서 'allow for natural weathering'이란 구절을 넣었다. 시간, 풍화, 등을 거쳐 작업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전달했다.
(4)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이영섭에게로와 순수한 아이가 되고 미륵이 되었다'는 직역을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직역을 하면(The Little Prince came to ~ to become~) 추상적인 의미 전달만 될 것 같아서 의역을 했다. Inspired by Saint-Exupery’s The Little Prince, he sculpted a pure child and a stone statue of Buddha. (어린왕자에 영감을 받은 이영섭 작가는 순수한 어린이 형상의 조각상을 만들었다.)
(5) '<어린왕자>는 남과 북을 평화로 잇는 매개자이다'에서 '매개자'를 번역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매개자'로 적합한 단어를 'in-between'으로 선택했다. '우리 사이에(between) 있는, 우리 안에(in)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전하면 될 것이라 판단했다. The Little Prince looks like an “in-between” to reconcile the North and the South in peace.
(6) '어린왕자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미래 한반도의 꿈을 보여줄 것이다'에서 '보여 줄 것이다'의 서술어 의미를 번역하는 데 역시 시간이 걸렸다. ㅜㅠ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왕자가 우리의 순수성을 일깨워서 앞날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할 것이다의 의미로 번역했다. 검색을 하면서, 동사 'envision'(바라는 걸 마음속으로 그리다)을 서술어로 썼다. The Little Prince envisions the future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midst of division and confrontation.
(7) '후고구려를 열망했던 궁예'에서 외국인은 대부분 '궁예'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약간의 부연설명을 붙였다. ~ Gung-ye, the king of the Hugoguryeo, who aspired to reunite the ancient kingdoms.
아래에 이영섭 작가의 작품을 좀 더 감상할 수 있는 사이트이다.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이기에 영어자막이 붙은 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
VIDEO | 조각가 이영섭
Lee Yeoung Sup Video, 조각가 이영섭 영상 The videos of sculptor Lee Yeoungsup's works. This page consists of his inteviews, introduction of his works.
www.leeyeoungsup.com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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