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결정체]
빛나기로 되어있다
떠다니는 구름 속에서 운명을 믿었다
휩쓸리는 바람 속에서 결정을 내렸다
빗자루에 내몰리고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빛나기로 결정된 몸이라는 걸...
운명이 날리듯 내리고
소복이 쌓이고
뽀드득 소리 낸다
- 박 상 민 -
수필
[결정체]
눈 결정체를 보았다.
계단을 오르는 난간 손잡이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이었다. 살짝 얼어 있어 눈 알갱이가 선명했고 사이사이 작은 공간에서 하얗고 조용한 숨을 내쉬고 있는 것 같았다. 곤히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눈맞춤했다. 일정하고 고요한 공간 속 조그마한 어딘가에, 작아도 또렷이 새겨져 있는 빛이 결정(結晶)되어 있었다.
눈맞춤하기 전부터... 눈이 쌓이기 전부터... 바람에 날리기 전부터... 구름에서 내리기 전부터...
떠다니는 구름 속 어딘가에서 작고 가볍게, 여리고 분명하게 운명이 새겨졌을 것이다. 맑고 투명하게 맺어졌을 것이다. 어려운 수학과 설계를 반복해 대칭과 균형을 이루어 배열되고, 냉엄한 규칙이 정교하게 세 번 내리쳐져 오롯이 새겨졌을 것이다. 찬 기운 속에서 그 운명은 더욱 확고해졌을 것이다.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고, 빗자루질에 한 곳으로 휩쓸리고 때로는 흙탕물을 뒤집어써도 빛나기로 결정(決定)되어 있는 몸(體)이라는 걸...
운명이 날리듯 내리고
소복이 쌓이고
뽀드득 소리 낸다.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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