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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시를 품은 수필

[동행]

by 한송이 안개꽃 2022. 12. 5.

[동행]

 

 

동행을 해주고 싶다

과거의 나를 만나면

 

인사도 말도 없이

동행을 해주고 싶다

 

위로도 조언도 없이

동행을 해주고 싶다

 

눈빛이 이야기

귀가 청진기

입술은 미소가 되어

동행을 해주고 싶다

 

혼자 앉은 벤치와

혼자 걷는 길에서

 

36.5˚C만 전해지는

그런 동행을 해주고 싶다

 

 

- 박 상 민 - 

 

대체
조카가 벽에 그린 낙서... 제목은 아마도... [두리걸어요] ^^

 

 

수필

[동행] 

 

 

10여 년 전 살았던 장소에 혼자 우연히 들렀다.

 

여전한 모습과 새로운 모습이 같은 풍경 속에서 편안해 보였다. 오고 가는 길에서... 그때 그곳에서 살았던 내가 오고 가는 게 보였다. 흐릿했던 기억들이 점점 선명하게 돋아났다. 여러 장의 흑백 사진에 채색이 되면서 입체적인 추억으로 살아 움직였다. 다시 만나는 아내는 한결같았고 아이들은 귀여웠다. 

 

익숙했던 길을 걸으며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우연히 만나면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과거의 내가 혼자 길을 걷는데... 불쑥 누군가 나타난 것이다. 알 듯 모를 듯한데... 그 사람은 바로 '지금의 나'. 어리둥절한 표정과 미묘하게 끌리는 듯한 인상을 찌푸리며, 지금의 나를 바라보는 과거의 내 얼굴이 떠올랐다. 그 떠올림이 선명해서인지 약간의 흥분이 일었고 발걸음에는 조심스러움이 감돌았다. 그렇게 다소 생뚱맞고 아리송한 만남을 상상해가며 예전 살았던 집 주변을 산책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어떤 조언이나 위로를 해주고 싶을까?'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차올랐지만 선뜻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았다. 해주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 꼭 필요한 말, 정말 도움이 되는 말... 붙잡고 조목조목 하고픈 말들이 거품처럼 치솟았다가 어느새 잠잠해지고 다시 발걸음은 묵직하고 고요해졌다.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우연히 만난다면...'

 

동행을 해주고 싶다. 지금의 내가 보내는 눈빛이 이야기가 되고, 지금 나의 귀기울임이 청진기가 되고, 지금 내 입술이 미소 그 자체인 듯 전해지는 그런 동행을 해주고 싶다.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36.5ºC만 전해지는 거리를 두고, 앞으로 펼쳐진 길을 함께 나란히 걸어가 주고 싶다. 혼자여도 혼자가 아닌, 그런 동행을 해주고 싶다. 

 

 

- 박 상 민 - 

수원 화성 산책길에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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