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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시를 품은 수필

[징검다리]

by 한송이 안개꽃 2022. 12. 27.


[징검다리]

 

 

덮치는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밟히는 무게에 가라앉지 않고

던져진 듯 놓여있다

 

오래전 그 자리에

어쩌다 이 자리에

 

사뿐사뿐 내딛는 발자국을

듬성듬성 받쳐 올린다

물이 흘러가라고......

발이 지나가라고......

 

홍수에 떠내려가지 않고

발꿈치에 눌려 잠기지 않고

 

물이 흘러가라고...

발이 지나가라고...

 

 

- 박 상 민 -

네어버 사전 징검다리 이미지

 

 

수필 


[징검다리]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오면 주변에 시냇물을 따라 이어진 산책길을 걸었다.

 

산책 시작 길에서는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돌아오는 길에선 시냇물을 따라 내려왔다. 물을 거슬러 올라갈 땐 내딛는 발걸음도 저항감을 느꼈다. 겹겹이 포개어진 지난 기억들을 조심히 들춰보며 약간 쓰라리고 약간 아찔하고 점점 아득했다. 지난 시간을 더듬어 올라가다 발걸음이 어느 정도 묵직해졌다 싶으면 징검다리를 건넜다.

 

징검다리의 돌덩이들이 납작 엎드려 물살을 견디었고 내딛고 지나가는 나의 무게도 견디었다. 차가운 물살에 시린 다리를 담근 채로 굳어있는 징검다리를 밟고 지나가며, 내 안에 물처럼 흐르는 어느 곳에서도 무엇인가가 밟혀지고 있었다. 

 

'개울에 어두커니 서 있던 아이의 눈물은 흐르는 물에 씻기우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덩어리들이 드문드문 모여 물살이 쏟아내는 이야기를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징검다리 사이사이에선 다급해진 속사정이 깊어지고...... 비좁고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성급하고 간절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덤비는 물살에 ―때로는 덮치는 홍수에― 용케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징검다리에게, 대단함의 껍질을 떼어내고 '대견함'의 옷을 입혀주었다. 징검다리 중간에 서서, 발목을 아리게 하는 물살이 낮고 넓은 이야기로 변해가는 풍경을 감상했다. 숱하게 밟고 지나간 무게에도 가라앉지 않고 고개를 들어 숨 쉬는 존재감 위에서 위태로움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다시 걸어가는 길...

 

시냇물을 따라 시냇물과 발맞추어 걸어 내려왔다. 물길을 따라 발길도 졸졸졸 흐르고... 앞다투어 쏟아졌던 이야기는 낮고 넓은 품에 고요하게 안기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도하게 흘렀다. 그렇게 징검다리를 건넌 발걸음은 물길을 따라 흐르고... 몸도 펼쳐진 풍경 속으로 스미며 걸어간다.

 

 

- 박 상 민 -

수원 원천리천 수변 풍경과 심리상담센터에서 받은 엽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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