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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시를 품은 수필

[누나가 있다는 건...]

by 한송이 안개꽃 2021. 7. 11.

[누나가 있다는 건...]

 

 

누나가 있다는 건...

 

주먹을 휘두르는 형이 없다는 것

 

대신 덤빌 만한 형이 생긴다는 것

덤비다가 할큄, 꼬집힘, 발길질을 당하는 것

당하고는 못살아 형 같은 누나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늘어지는 것

늘어나는 말싸움과 몸싸움을 하며 치사하고 치열하게 자라는 것

 

자라면서 소녀의 세계를 접하는 것

인형, 순정만화, 거울, 치마, 머리카락, 고무줄, 그리고 수다... 그리고 눈물...

 

눈물에 겁먹으며 놀리고

소녀의 환상과 동경을 거부하고 쫓으며,

여자의 걱정과 나약함에 강한 남자를 꿈꾸는 것

꿈을 깨어서는 여성의 강인함에 풀썩 기대는 것

 

기대며 어느새 페미니즘과 함께 걸어가는 것

걷다가 문득 바라본 거울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 나의 모습과 삶을 상상하는 것

상상력으로 미용과 패션을 일상화하는 것

일상에서 느껴지는 안팎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자로 살고 싶은 것

 

남자로 태어나, 내 안에 발견된 여성을 외롭지 않게 바라보는 것

바라보는 누나에게서 나를 다시 바라보는 것

바라보며 느낀, '누나'라는 단어에서 '나'라는 단어를 반갑게 다시 바라보는 것

 

그렇게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것

   

          

  - 박 상 민 -

누나와 나

 

 

수필

[누이와 누나]

 

일반적으로 남자가 손위 여자를 부르는 말에는 '누이'가 있고 '누나'가 있다. '누이'라는 말은 좀 예스럽고 아련한 느낌이라면, '누나'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일반적인 호칭이면서 다정다감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친근함 정감을 익숙한 동요나 시에서 자주 접한 것 같다.

 

<퐁당퐁당>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러 주어라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손위 여자를 일컫는 누이라는 말과, 손위 남자를 일컫는 오라비를 말을 바라보며, 왜 같은 인물을 두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호칭이 등장했는지 궁금했다. 역사적인 근거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기술해본다.

 

농경 사회, 식민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손위 누나(누이)와 손위 오빠(오라비)는 흔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재한 경우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을 것이다. 박수근 화백의 「아이 업은 소녀」를 보면, 젖먹이 아이가 누이의 등에 업혀 곤히 잠들어 있고, 그 누이는 검정 고무신 위로 묵직한 종아리를 드러내며 양육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어미의 몫을 감당했던 누나는 누이로 불렸을 테고, 아비의 몫을 감당했던 오빠는 오라비로 자연스레 불리게 된 건 아닐까. 

 

「누나가 있다는 건....」 이란 제목의 시를 쓰며,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 손위 여형제가 나에게 누이로 남아있지 않고 누나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또한 감사했다. 이 세상에 '누이'로 불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정겹고 다정하게 불리는 '누나'가 가득하길 바라본다.

 

 

- 박 상 민 -

박수근 화백, 아이 업은 소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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