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누나가 있다는 건...]
누나가 있다는 건...
주먹을 휘두르는 형이 없다는 것
대신 덤빌 만한 형이 생긴다는 것
덤비다가 할큄, 꼬집힘, 발길질을 당하는 것
당하고는 못살아 형 같은 누나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늘어지는 것
늘어나는 말싸움과 몸싸움을 하며 치사하고 치열하게 자라는 것
자라면서 소녀의 세계를 접하는 것
인형, 순정만화, 거울, 치마, 머리카락, 고무줄, 그리고 수다... 그리고 눈물...
눈물에 겁먹으며 놀리고
소녀의 환상과 동경을 거부하고 쫓으며,
여자의 걱정과 나약함에 강한 남자를 꿈꾸는 것
꿈을 깨어서는 여성의 강인함에 풀썩 기대는 것
기대며 어느새 페미니즘과 함께 걸어가는 것
걷다가 문득 바라본 거울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면...' 어땠을 나의 모습과 삶을 상상하는 것
상상력으로 미용과 패션을 일상화하는 것
일상에서 느껴지는 안팎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자로 살고 싶은 것
남자로 태어나, 내 안에 발견된 여성을 외롭지 않게 바라보는 것
바라보는 누나에게서 나를 다시 바라보는 것
바라보며 느낀, '누나'라는 단어에서 '나'라는 단어를 반갑게 다시 바라보는 것
그렇게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것
- 박 상 민 -
수필
[누이와 누나]
일반적으로 남자가 손위 여자를 부르는 말에는 '누이'가 있고 '누나'가 있다. '누이'라는 말은 좀 예스럽고 아련한 느낌이라면, '누나'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일반적인 호칭이면서 다정다감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친근함 정감을 익숙한 동요나 시에서 자주 접한 것 같다.
<퐁당퐁당>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냇물아... /우리 누나 손등을 간지러 주어라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손위 여자를 일컫는 누이라는 말과, 손위 남자를 일컫는 오라비를 말을 바라보며, 왜 같은 인물을 두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호칭이 등장했는지 궁금했다. 역사적인 근거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기술해본다.
농경 사회, 식민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를 거치면서 손위 누나(누이)와 손위 오빠(오라비)는 ― 흔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재한 경우 ―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을 것이다. 박수근 화백의 「아이 업은 소녀」를 보면, 젖먹이 아이가 누이의 등에 업혀 곤히 잠들어 있고, 그 누이는 검정 고무신 위로 묵직한 종아리를 드러내며 양육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어미의 몫을 감당했던 누나는 누이로 불렸을 테고, 아비의 몫을 감당했던 오빠는 오라비로 자연스레 불리게 된 건 아닐까.
「누나가 있다는 건....」 이란 제목의 시를 쓰며, 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 손위 여형제가 나에게 누이로 남아있지 않고 누나로 남아있다는 사실에 또한 감사했다. 이 세상에 '누이'로 불리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정겹고 다정하게 불리는 '누나'가 가득하길 바라본다.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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