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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시를 품은 수필

[나무와 귀耳]

by 한송이 안개꽃 2021. 12. 3.


[나무와 귀耳]

 

가지가 잘려 나가고

귀가 생겼다

 

찌르는 칼이 떨어지고

바람을 들인다

 

핏줄 돋은 뿌리가

땅을 움켜쥐고

 

푸른 머리 들어 올려

하늘로 향한다

 

- 박 상 민 -

아파트 근처 나무(좌) 제주도 비자림 나무(우)

 

 

수필 

[나무와 귀耳]

 

'나무에게 귀가 있다'라고 나는 믿는다. 

 

가지치기를 한 자리가 나에게는 '나무의 귀'로 보인다. 잘린 부위에서 옴폭 들어가 있는 모양새가 사람의 귀를 떠올리게 한다. 길을 걷다 마주한 나무에게서 귓구멍 자국의 개수를 헤아려보고 생김새를 종종 관찰해본다.

 

가지치기는 분명 나무에게 느닷없이 가해지는 고통일 것이다. 톱이나 낫으로 몸뚱아리 일부가 잘리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시점에서 전지를 해주지 않는다면, 햇빛 투과율이 낮아지고 병충해에 시달리며 연약한 상태로 계속 생장하게 되어, 과실나무의 경우 열매를 잘 맺지 못한다고 한다. 나무에게는 건강한 성장과, 인간에게는 알찬 수확을 위해 가지치기는 꼭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나무의 잘려 나간 자국을 살짝 더듬을 때면, 내 안에 어느 한 부분도 살짝 아려 온다. 타인과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분열되고 분리되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거나 고통은 크게 혹은 작게 흔적을 남긴다.  

 

가지치기 한 자리를 바라보며 '귀'(耳)를 떠올렸다. 고통의 흔적 속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찌르는 칼이 떨어지고 바람을 들이는 열린 문짝(門)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 조그만 '문'(聞)을 통해, 비로소 나무는 푸른 하늘로 자신의 머리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나무를 보고 나무의 귀를 보고 다시 나무 위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두 귀를 귀한 마음으로 다시 간직했다. 내 마음 속 몸뚱아리에 나 있는 귀들도, 바람을 향해 푸르름을 향해 다시 간직한다.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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