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
"아빠!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 좀 들어봐"
아이들에게 비빔밥을 비벼주며
근심 가득 아빠가 머릿속 사발에 생각을 이리저리 비비고 있다가
울렸던 소리
"아빠!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 좀 들어봐"
찰지게 시뻘겋게 윤기 나게 비벼지는
비빔밥에
고소하게 피어오르는 냄새
의도하지 않은 아이의 흔들어 깨움에
눈 껍질이 떨어지고
귓문이 열리고
콧구멍은 비로소 살아있는 현실을 쫓는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의 경험이
귓구멍과 콧구멍 세포 속에 새겨진다
이제 입으로 비빔밥 들어오는 소리
아이 입에도 비빔밥 들어가는 소리
- 박 상 민 -
수필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
때론 머릿속에 근심걱정이 가득할 때가 있다. 뒤숭숭한 정신 상태로 부모라는 책임감에 떠밀려 몸뚱이는 마지못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비빔밥. 몸은 이리저리 비빔밥 메뉴를 준비하느라 부산했고 머릿속은 이러저러한 생각들로 뒤 썩혀 있을 무렵...
아들이 "아빠!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 좀 들어봐~"라는 작은 외침을 전해왔다.
그 순간... 마치 난생처음으로 비빔밥이 비벼지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찰지게 시뻘겋게 윤기 나게 비벼지는 비빔밥에 고소한 냄새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각했다. 눈, 코, 입, 귀가 마주하는 현실을 향해 동시에 열렸다. 비빔밥 비비고 있는 일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 있는 일상의 경험이지만, 그날의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와 비빔밥 냄새 그리고 비빔밥 맛을 내 안에 있는 감각세포에 정성스레 새겨 넣고 싶었다. 막상 몸은 비빔밥을 비비고 있지만, 숱한 생각들을 머릿속 사발에서 이리저리 비비고 있는 내 모습과, 그런 아빠 앞에서 비빔밥 비벼지는 소리를 들으며 침을 꼴딱꼴딱 흘리고 있었던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 극명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은 어른에게 아이의 존재는 특효약이다. 아이는 어른에게, 살아있는 현실로 돌아오는 지름길을 때때로 안내한다. 의도하지 않은 흔들어 깨움으로... 그렇게 생각이 많은 어른은 다시 현실 감각을 찾는다. 아이와 함께 비빔밥을 비벼 먹으며 아이의 존재가 새삼 고맙다.
- 박 상 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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